이번에는 자성대공원과 조선통신사역사관을 방문하였습니다. 자성대공원은 많은 분들이 그냥 일반적인 공원으로 생각하고 계신데 자성대는 지금은 볼 수 없는 부산진성의 지성으로 유일하게 그 형태를 일부 보존하고 있는 곳으로 역사적인 명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쪽으로 올라가면 진남대가 자리 잡고 있고 그 옆에는 천장군기념비가 있습니다. 부산진지성에 대한 설명도 읽을 수 있는데 설명으로는 임진왜란 당시는 왜군이 일본식 성으로 쌓기도 하였고 그 전에는 부산진성의 외성이 있었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예전에 매축공사 이전에는 바다옆에 바로 위치하였는데 옛지도를 통해서 확인을 할 수 있습니다. 최영장군비각도 자성대공원에 있습니다.
동쪽으로 가면 영가대를 볼 수 있습니다. 영가대는 통신사들이 일본을 향해 배를 띄울때 무사항해를 기원하는 해신제를 지내던 장소로써 통신사와 관련된 상징적인 건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가대 또한 매축공사 이전에는 바다 바로 옆에 위치하였습니다. 만약에 매축공사가 없었다면 자성대와 함께 바다와 함께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였을 것 같아 아쉽습니다.
자성대공원의 남동쪽에는 조선통신역사관이 있습니다. 매주 월요일마다 휴관하며 오전9시부터 오후6시까지 관람이 가능합니다. 안에서는 통신사의 역사와 통신사 행렬에 관한 지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1전시관과 2전시관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전시관에서는 역사에 대해서 2전시관에서는 행렬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1전시관에서 통신사의 역사를 살펴보면서는 임진왜란 이후 일본과 외교단절을 하였다가 외교를 시작하고 평화를 약속하면서 통신사를 시작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통신사가 지속되는 기간동안 일본과 사이좋게 오랜세월을 지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와 함께 통신사와 관련된 중요한 장소들로 통신사행렬의 2차 집결지인 영천과 대일외교중심지인 초량왜관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고 일본과의 교류를 통해서 들어온 귀중한 유물들도 볼 수 있었습니다.
2전시관에서는 통신사 행렬의 모습이나 그 여정을 볼 수 있었는데 한양부터 시작해서 일본 에도에 이르는 그 여정이 정말 길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또 행렬에는 400~500명이라는 대규모의 인원이 참여하였고 참여한 인원들은 삼사에서 하관까지 8단계로 또 다양한 임무와 역할을 담당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마상재라는 인물도 갔었는데 마상에서 곡예를 부리는 사람들로 이러한 인물들까지 참여한 것으로 통신사를 통해서 정말 광범위하게 문화교류를 하였을 것을 추측할 수 있었습니다.
통신사의 마지막과 그 의미도 읽었는데 안타까웠습니다. 1811년 서양열강들이 제국주의 침략을 하는 혼란한 시기에 마지막 통신사파견이 있었고 일본에서 메이지유신이 일어나고 1875년 운요호사건과 강화도조약 체결이 있으면서 일본과의 평화적관계는 끝이 납니다. 하지만 오랜 통신사 외교의 의미는 깊습니다. 통신사가 있었던 오랜시기동안은 일본과의 전쟁도 없었고 평화롭게 문물교류를 했고 이는 국제외교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선례라고 합니다. 세상의 변화에 평화는 결국 깨어졌지만 그 의미는 오랫동안 지속될 것 입니다.
자성대공원과 조선통신사역사관에서 지형의 변화와 역사의 변화를 느꼈습니다. 오래전 바다와 함께 멋진모습을 뽐냈을 부산진지성과 영가대를 상상해봅니다. 통신사를 통해서는 평화적인 문물교류의 선례를 되새기며 앞으로의 한일관계가 증오의 관계가 아닌 평화우호의 관계로 나아가기를 기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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