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통까지 삶아 드실 것 같은 무더위에 땀은 매너 없이 쏟아진다. 혼이 빠져가는 컨디션에 밥한 숟갈 입안으로 삼켜 넣기도 쉽지 않은 일. 이열치열이다 복날이다 해서 뜨끈한 음식 찾기도 하지만 결국 차디찬 것이 입에 끌리기 마련이다. 입안을 꽁꽁 얼려주는 것이라면 아이스크림만한 것이 없다. 한입 넣기도 무서울 정도의 값비싼 아이스크림들이 우리의 혀를 유혹하지만 아이스크림이라면 역시 동네슈퍼 냉동고를 뒤져서 한입 시원하게 깨물어 녹여먹는 것이 최고다. 하드 한번 대범하게 잘라먹고 쭈쭈바 한번 쪽 빨아 마시면 머리까지 꽁꽁 어는 것 같다.
바다분위기 나는 빙과류를 찾기 위해 슈퍼로 향했다. 그러나 너무 빨리 난관에 봉착하고 말았다. 다양할 줄 알았지만 ‘붕어싸만코’, ‘죠스바’ 외에는 바다와는 거리가 먼 것뿐이었다. 뭐 끼워 맞출 수야 있지만 그런 생떼는 부릴 수 없다. 그래 소용돌이를 닮은 ‘스크류바’까지는 양해를 구하며 리스트에 올릴 수 있다 치지만 나머지 아이스크림들은 나의 눈을 외면하고 있었다. 어릴 적 내 여름철 장난감이었던 ‘거북알’은 어디 있단 말인가. 냉동고에 머리를 들이밀고 뒤적였다. 직원에게 혼났다. 다른 동네슈퍼로 향했다. 또 머리를 넣고 냉동고 안을 엎어놨다. 주인아저씨가 짜증을 내셨다. 미안해서 껌 한통에 돌아섰지만 찍혀서 다시 찾아볼 수 없는 그 이름. ‘거북알’. 난데없이 불같은 땡볕아래 왠 종일 ‘거북알’찾아 동네 한 바퀴를 돌았지만 주인아저씨의 신경질만 껴안고 돌아섰다. 비닐봉지에 아이스크림이 녹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찾을 수도 없는 일. 인터넷에 떠도는 사진을 이용하는 것은 내 똥고집이 허락하지 않았다. 우리 동네엔 ‘거북알’이 잘 팔리지 않는 다는 사실을 깨닫고 땀을 한가득 흘린 오후였다.
그렇다면 다른 아이스크림은 있을까. 안타깝게도 각종 과일로 무장한 아이스크림은 많았지만 바다 냄새나는 것은 더 이상 없었다. 빙과류 새 제품 출시가 예전같이 않다는 이유도 작용했을 것이다. 여름과 시원함의 상징인 바다와 관련된 아이스크림이 이렇게 적다니. 그래도 부푼 기대를 안고 시작한 글을 포기할 수 는 없다. ‘죠스바’, ‘붕어싸만코’, ‘스크류바’ 3개 빙과류라도 시원하게 뜯어 살펴보겠다.
잠깐 우리나라 아이스크림 시장의 역사를 살펴보자면 196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0년대 초반까지 우리나라에서 아이스크림이라는 것은 물에 설탕과 사카린을 섞어 얼리거나 팥을 넣어 만든 아이스케키가 대부분이었다. 리어카에 싣고 다니며 팔던 아이스케키는 1962년 공표된 ‘식품위생법’으로 판매가 힘들어 졌고 1963년 삼강산업에서 대량판매를 하기에 이른다. 출시된 제품은 ‘삼강하드’였다.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대량생산체제를 갖춘 빙과류는 1963년 1월 ‘삼강하드’가 시작이었다. 지금도 ‘죠스바’, ‘수박바’ 등의 단단한 아이스크림을 하드라고 부르는데 그 유래는 ‘삼강하드’였던 셈이다. ‘삼강하드’의 인기는 실로 대단했다고 한다. 1970년대에는 삼립식품에서 쭈쭈바의 시초인 ‘아이차’를 출시한다. 이후 ‘쭈쭈바’라는 이름을 내세운 빙과류를 출시하게 되고 오늘날 비닐이나 종이팩으로 만들어져 녹여먹는 아이스크림의 대명사가 된다. (출처 네이버캐스트 '설레임')
[슈퍼에서 파는 아이스크림 중 긴 막대기에 꽂힌 아이스크림을 하드(hard)라고 한다. 하드라는 말은 무슨 말일까. 하드는 하드아이스크림(hard icecream)의 준말이다. 공기를 뺀 단단한 아이스크림이라는 뜻으로 공기를 넣은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은 소프트아이스크림(soft icecream)이라고 한다.]
-무시무시하게 시원한 ‘죠스바’
대한민국에서 입이 새파란 사람을 봤다면 둘 중 하나다. 아프거나 ‘죠스바’를 먹었거나. 요즘은 예전만큼 시퍼렇게 되진 않는 것 같지만. 예전엔 색소가 무척 강했던 모양이다. 새파란 입술에 시뻘건 혀로 ‘죠스바’ 먹은 티를 팍팍 내며 친구들과 놀았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스필버그는 죠스로 온몸이 오싹한 스릴을 만들어 냈지만 대한민국은 죠스로 온몸이 오싹한 맛을 만들어 냈다. 그런데 궁금하다. ‘죠스바’는 영화 ‘죠스’에서 따온 것이 분명한테 일종의 로열티를 지불하고 생산하는 것일까. 알 길은 없다만 스필버그도 ‘죠스바’ 한입에 영화이상의 시원함을 경험할 것은 분명하다.
대량 판매되는 빙과류치곤 꽤 섬세한 상어모양을 하고 있다. 상어를 닮은 겉 색깔과 빨간 속내까지 빼다 박았다. 여름, 상어, 아이스크림의 환상궁합, 지금봐도 기발한 아이디어다.
‘죠스바’는 사람나이로 따지면 아저씨로 접어들 나이다. 1983년 탄생한 이래로 지금까지 정말 오래도록 사랑받고 있는 제품이다. 오랜 시간만큼 ‘죠스바’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가격도 불나게 변했다. 몸에 해로운 색소를 없애고 천연색소를 넣은 것도 변화된 것 중 하나. 덕분에 먹는 재미는 줄었지만 아이들 먹이는데 걱정은 줄어들었다. 무엇보다 건강이 최고니까. 그래도 파란 입술의 어릴 적을 생각하며 즐겁게 빨아먹었는데 말짱한 입에 조금 서운해졌다. 그 시절 빨간 혀를 내밀며 친구들이랑 하루 종일 놀았는데. 상어를 그럴싸하게 닮은 외관을 무섭게 베어 먹으면 빨간 속살을 드러낸다. 무서운 겉모양과 달리 맛은 달콤하다. 오렌지 맛인지는 모르겠지만 달달한 죠스의 껍질을 녹여먹으면 새콤달콤한 딸기 맛이 기다린다. 90㎉이다. 비타민이 들어있다는데 영양소를 얻으려면 차라리 과일을 권하고 싶다. ‘죠스바’는 식품의약품안전청으로부터 어린이기호식품 품질인증을 획득했다고 한다. 화학첨가물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말인데 조금 안심하고 즐겨도 될 것 같다. 그래도 적당히 먹자.
-붕어빵을 닮은 ‘붕어싸만코’
붕어빵이 형님이라고 부를 정도의 붕어빵의 우람한 버전. 겨울을 붕어빵이 책임진다면 여름은 ‘붕어싸만코’가 책임진다. 항상 나를 고민하게 만드는 3대 케이크형 아이스크림이 있다. ‘빵또아’, ‘국화빵’ 그리고 ‘붕어싸만코’이다. 하드와 쭈쭈바보다 뭔가 고급스러운 맛, 있어 보이는 모양. 하지만 쭉쭉 빨아먹는 다른 빙과류보다 흡입시간(?)이 짧아서 금세 먹고 다른 친구 불쌍하게 쳐다만 봐야했던 그 아이스크림들. 특히 이것들을 먹을 땐 아주 조심하고 신속하게 먹어야 한다. 속의 크림이 조금이라도 녹으면 배어먹을 때 속살(?)이 다 흘러나와 본래의 형체는 이미 달나라로 가버린다. 쌓아둔 이미지는 무너지고 굴욕적인 모양새로 먹던 경우도 우리는 종종 보아왔다. 그래서 맛 난다고 아껴먹거나 여유 있게 먹다간 두 손 가득 찝찝함으로 도배가 될 것이다.
‘붕어싸만코’는 1991년 탄생한 제품이다. 뭐가 업그레이드 됐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이름에 ‘참’이 붙어 ‘참 붕어싸만코’다. 아 가격이 업그레이드 되었구나. 속에는 크림과 팥이 사이좋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큰 비중을 차지하는 크림과 소심하게 끼어있는 팥은 궁합이 좋다. 그야말로 입에서 사르르 녹는다. 팥이 더 들어 있으면 좋겠지만 가격도 오를 것이고 이정도로 감질 맛나게 먹어야 또 먹게 되는 법. ‘붕어싸만코’ 한 마리 사다가 껍질을 살짝 벗겨 팥 따로 크림 따로 먹었던 기억이 난다. 초코파이를 마시멜로우 따로 빵 따로 먹는 것만큼 진상이다. 200㎉이다. 언제나 이런 아이스크림이 그렇듯 겉의 과자는 정말 맛이 없다.
그런데 싸만코란 무엇일까. 인터넷을 뒤져본 결과 각종 추측이 난무했다. 썸머와 앙코의 합성어라는 설과 사투리라는 설까지. 그러나 의미는 정말 단순명쾌했다. 싸만코란 ‘값싸고 양 많고’를 소리 나는 대로 발음한 것이라고 한다. 그 많은 추측들이 허탈해지는 순간. 대중적인 제품이라면 역시 쉽고 재밌는 것이 최고다.
-소용돌이 시원함 속으로 ‘스크류바’
‘스크류바’는 요란하게 먹어야 한다. 베어 먹어서도 안 된다. 양손으로 기도하듯 바를 잡고 빙빙 돌려야 한다. 입술이 벌겋게 얼얼할 때까지. “후루룩”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며 시원함이 온몸으로 전달된다. 그런데 친한 사람들 앞에서 먹어야지 초면인데 ‘스크류바’를 과도하게 후루룩 빨았다간 과도한 첫인상을 남겨줄 것이다.
“비비 꼬였네. 들쑥날쑥해~” 유명한 씨엠송이다. 지금은 이 광고는 볼 수 없지만 우리머리 속에 깊이 각인 되어있는 ‘스크류바’. 모양도 먹는 방법도 휘몰아치는 소용돌이를 닮았다. 뭐 스크류가 나사라는 뜻이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시원한 아이스크림인데 소용돌이가 더 어울리지 않겠나. (이렇게 또 바다와 힘들게 연결시켜 본다.)
‘스크류바’는 1985년 출시된 이래 오랜 시간동안 꾸준한 인기를 받고 있는 대단한 히트상품이다. 2006년에 포도맛이 나왔다고 하는데 조용히 묻혀버렸다. 후루룩 거세게 사과맛 소용돌이를 빨아먹고 나면 딸기맛 허연 속살을 드러낸다. 대부분의 아이스크림들이 겉맛 다르고 속맛 다른 전략을 취하고 있는데 어느 순간부터 하나의 흐름이 되어 버렸다. 먹는 재미는 겉이 더 낫지만 새콤달콤한 맛은 속이 더 낫다. (겉과 속, 어느 것이 딸기맛 인지 사과맛 인지 헷갈리긴 한다.) 그런데 겉을 빙빙 핥아 먹을 땐 조심해야 한다. 무작정 빨다간 손으로 줄줄 흐르게 된다. 갖은 고초를 이겨내고 ‘스크류바’를 뾰족한 모양으로 재탄생 시켰을 때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다. 간혹 전동드릴에 끼워서 장난치는 사람들 있는데 입술부상 드릴고장을 떠나 일단 혼납니다~ 지인들이랑 ‘스크류바’를 먹는 방법에 대해 시간낭비 토론을 한 적이 있다. 후루룩 돌려서 빨아먹는 다는 대중적인 의견이 가장 많았다. 남자라면 무작정 깨물어 먹어야 한다는 의견부터 겉은 살살 발라먹고 속을 따로 먹는 다는 다소 변태적인 방법까지 다양한 의견이 나왔었다. 가장 많은 방법은 역시 빙빙 돌려 빨아먹는 것. 그런데 이 방법에도 단점은 있다.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 맛을 제대로 즐기려면 살짝 살짝 베어 먹어야 한다. 재미를 택하느냐, 맛을 택하느냐 선택은 당신의 몫. 95㎉이다.
-'스크류바'만큼 유명한 온몸꼬기 달인 아저씨-
차가운 아이스크림에 청량한 바다의 모습도 더해져 시원함은 배가 된다. 한입 베어 물면 입안의 찬바람이 온몸에 휘몰아친다. 여름철 건강을 생각해서 따뜻한 음식으로 속을 채워야 한다는 말도 많지만 적어도 나는 더워죽겠는데 뜨거운 국물 따위 마실 인내심은 없다. 아이스크림 한입에 잠깐의 여름 탈출이라도 맛보련다. 다만 너무 많이 먹지말자. 단 3개 한꺼번에 먹었을 뿐인데 지금 배가 아프다. 입은 마비되는 것 같고, 차가운 것은 너무 씹어 먹었더니 머리도 띵 하다. 가격도 무덥게 올라서 자주 사먹을 자신도 없다. 무더운 가격을 생각하면 한입 베어 먹은 시원함도 이내 찝찝함으로 변한다. 그래도 아주 안 먹고 살수는 없으니 아주 가끔씩 즐기도록 하자. 똑같이 비싼 과일은 차라리 몸에라도 좋으니 이왕 먹을 거라면 과일을 권하고 싶다. 그저 한여름 더위 날릴 먹거리 하나 사는데도 치솟는 물가에 건강에 이런저런 부담을 생각해야 하는 서글픈 요즘이다. 그나저나 거북알은 도저히 못 찾겠다.
바다야사랑해 블로그기자 3기 김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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