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속기관/남해수산연구소

제주바다의 호랑이 '범돔'

NIFS 2009. 10. 30. 09:46

 

역동적인 유영을 하고 있는 제주바다 호랑이 '범돔'

 

   

'범돔' 이름만 들어도 보통의 물고기는 아닌 듯 하다. 육상의 모든 짐승 중에서도 왕이라고 할 수 있고 보통의 짐승이나 인간들도 넘보지 못할 정도로 위엄 있고 용맹스러운 짐승인 호랑이를 의미하는 '범'자와 조금 품격이 낮은 멸치와 꽁치와 같이'-치'가 붙지 않고 물고기 중에서도 맛있고 귀한 물고기에만 붙는 '-돔'자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이름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남해안과 제주도, 일본, 대만, 호주 등 전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분포하는 범돔에게서는 호랑이처럼 용맹스러운 기세는 찾아볼 수 없다. 겁이 매우 많아서 조금이라도 이상한 그림자가 비치면 곧바로 그 자리를 피한다. 그리고 항상 무리를 지어 다닌다. 무리를 지어 다닌다는 것은 한 마리의 힘으로는 자신에게 닥쳐오는 위험을 해결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범돔의 크기는 10~15cm 정도의 크기로 식용으로 하기에는 조금 작은 편이다. 그리고 먹이보지는 않았지만 맛이 없는지 어촌마을에서도 식용으로는 이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낚시꾼들이 드리운 바늘의 먹이를 떼어 먹고 도망가는 귀찮은 존재이다.

 

 

이처럼 다른 바닷물고기에 비교하여 독특한 생태를 가지고 있지도 않고 식용으로 이용 가치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범돔'이라는 심상치 않은 이름을 갖게 된 것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느 날 전라남도 여수 시내의 수족관에서 손님들의 눈에 가장 잘 띄는 가게의 중간에 배치된 수조에서 무리지어 유영하는 어린 범돔을 본 적이 있다.

 

밝은 개나리색의 광택이 온 몸을 휘감고 그 위에 짙은 묵색의 줄무늬가 약 45°의 각도로 비스듬하게 나 있는데 5줄은 뚜렷하게 관찰 가능하고 배 밑의 6번째 줄은 불연속적으로 매우 역동적으로 수조 속을 유영하고 있었다.

 

노랑, 빨강 파랑의 원색을 기본 색으로 하는 화려한 색상을 띠는 대부분의 해수관상어는 인도네시아, 필리핀, 폴리네시아 등의 적도 부근의 열대지역에 서식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노랑, 빨강, 파랑의 3원색처럼 화려하지도 않으면서도 해수관상어로서 인기가 있는 물고기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제주도 연근해에서 쉽게 관찰되는 '범돔'이다.

 

범돔은 농어목(Perciformes) 황줄깜정이과(Kyphosidae) 범돔속에 속하며 학명은 Microcanthus strigatus로 열대 지방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남해안 일부와 제주도와 같은 온대 지방에도 서식한다. 제주도에서는 5월 이후부터 비교적 쉽게 관찰이 가능한데 밀물과 썰물의 수위 차에 의하여 일시적으로 생기는 연안의 바닷물 웅덩이(타이드풀 tide pool, 조수웅덩이)에서 빠르게 군영 하는 3cm 내외의 범돔 새끼를 보거나 채집하는 것도 가능하다.

 

비교적 수온이 높은 제주도에서 범돔은 연중 제주 근해에 서식하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수온이 낮은 겨울철에는 수심이 깊은 곳으로 이동하거나 약간 먼 바다로 이동하기에 관찰하기 힘들다. 그러나 4월을 전후하여 연안에서 산란된 범돔의 치어는 해조 숲이나 연안에 형성된 타이드풀에서 성장한다. 그리고 6~7월이 되면 타이드풀을 떠나 연안에서 성장한다. 범돔 성어의 크기는 약 20cm 정도 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제주도 연안의 깊은 수심에서는 가끔 30cm 이상의 크기도 어획되거나 관찰 가능되고 있다.

 

제주도에서 범돔은 남신발레, 똑대기, 곡돔 등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데 이들 방언의 의미는 명확하게 알 수 없다. 한편 범돔의 영명은 Stripey, Footballer로 stripey는 범돔의 몸에 줄무늬가 명확하게 나 있는 것에서 유래된 것으로 stripe는 미국의 구어에서 호랑이를 의미한다고 한다. 그리고 Footballer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범돔의 유영하는 모습에서 연상된 것으로 축구공을 쫓아서 구장의 이 구석 저 구석을 몰려다니는 줄무늬 유니폼의 축구 선수들처럼 보인 것에서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국립수산과학원 제주수산연구소 정민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