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기자단(1~10기)/3기

독도를 지켜낸 조선시대 어부 안용복

NIFS 2011. 9. 2. 17:14

 

 

 이젠 지겹다. 일본 우익세력은 또 다시 우리 땅 독도를 건드렸다. 쓰나미로 인해 떨어진 국민신뢰를 얻기 위한 정치 쇼인지 뭔지 알바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일본의 독도침범은 가속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애들이 땅따먹기 할 때도 상대편 땅 넘어가면 그냥 아웃이다.

초등학생도 아는 법칙이며 진리다. 일본 우익단체는 초등학교부터 다시 다녀야겠다

소설을 써놓은 역사 교과서 때문에 그쪽 초등학생들은 뭘 배우고 자랄지 걱정이 되긴 한다.

 암튼 일본은 듣는 척도 안하겠지만 한 번 더 독도가 우리 땅임을 확인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독도가 대한민국 영토인 수많은 이유 중에 가장 결정적이라 생각하는 안용복 장군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유랄 것도 없겠다. 사실을 사실이라 말하는데 뭔 이유가 있겠나.)

이번 일을 계기로 독도가 우리 땅인 이유에 대한 자료를 가공할 만큼 수집하였지만

기사가 끝이 없어질 것 같기도 하고, 바다와 연결이 되어야 하니 조선시대 위대한 어부 안용복에 대해서만 다루기로 한다.

 

 어부 안용복은 울릉도와 독도에 일본이 침범하자 강경하게 대응하고 독도를 지켜냈다.

그리고 독도가 우리 땅임을 재확인시키고 일본이 독도에 얼씬도 못하게 했다.

안용복의 이런 업적을 기리기 위해 부산 수영사적공원에서는 안용복의 동상을 세우고 안용복 장군 사당을 모시고 있다.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 수영사적공원으로 향했다. 보통 수영공원이라 불리는 곳이다.

수영사적공원은 옛날 만해도 관리부실로 좌수영성지의 가치가 퇴색되어 갔지만

지금은 많은 신경을 썼는지 문화재 보전과 주민들의 쾌적한 쉼터로 제 역할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좌수영성지의 옛 남문이 공원의 입구로 자리 잡고 있고 안용복을 기리는 사당과 동상은 공원 뒤편에 있다.

 

[수영사적공원: 수영사적공원은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동에 있는 역사 공원으로, 경상좌수영성지에 마련되어 있다.

좌수영성은 부산 수영구 수영동, 망미동, 광안동 일대에 2,785m규모의 성으로, 조선 숙종 18(1692)에 다시 쌓았다고 전한다.

일제 강점기에 관리를 소홀히 하여 대부분 무너졌다.

현재는 성 터(부산 시도기념물 제8, 좌수영성지)가 남아 있고, 성지 관련 유적을 수영사적공원으로 조성하였다.

 공원 안에는 수영성남문(부산 시도유형문화재 제17), 25의용단(부산 시도기념물 제12),

부산 좌수영성지곰솔(천연기념물 제270), 부산 좌수영성지 푸조나무(천연기념물 제311)

지정문화재와 안용복 장군충혼탑 등 비지정문화재가 있다. 이를 보전하고 관리하는 수영민속예술관이 함께 있다.](위키백과)

 

 

 


큰지도보기

수영사적공원 / 도시근린공원

주소
부산 수영구 수영동
전화
설명

 

<수영사적공원 지도 -다음>


 

 안내 표지판이다. 안용복의 업적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외관도 깔끔하고 정갈하다.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있어 이곳을 찾는 이방인도 안용복에 대한 정보를 편하게 안내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유적지나 전시관이 늘 그렇듯 그 외에 특별한 점은 없다.

 

 

 안용복을 모시는 사당이다. ‘안용복 사당 수강사라고 부르는데 수강사라 함은 우리 강토를 지킨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현재 가까이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안용복 사당으로 가려면 수영사적공원 입구로 천천히 걸어가도 좋지만

수영팔도시장을 끼고 있어 시장 한 바퀴 돌고 찾아가도 좋다.

 입구인 남문은 수영팔도시장 안 수영동사무소 옆에 위치하고 있고 사당으로 바로 가려면 수영역에서 300m정도 걸어가면 보인다

. 주위에 큰 건물이 없어 자세한 설명이 불가. 표지판이 친절히  안내하고 있으니 따라가면 되지 싶다.

(백번 설명해도 지도 한번 보는 것이 낫겠다. 위 지도를 참고.)

 

 안용복 사당은 20013월에 완공되었으며 매년 418일에 제향을 한다.

생각보다 완공 된지 오래되었다. 그만큼 관리를 착실히 잘했다는 것.

구름이 잔뜩 낀 날에 찍어서 그렇지 화창한 날에 가면 아주 쾌적하고 깔끔한 모습을 자랑한다.

 

 안용복 장군의 동상이다. 안용복 장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안용복 장군 기념 사업회에서 수영사적공원에 세웠다.

 양옆에는 배를 타고 일본으로 향하는 양용복의 모습과 일본 관리들을 상대하는 안용복의 모습을 동판으로 새겨 놓았다.

앞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면 모두에게 보여줄 텐데 출입 금지되어 있어 말로만 설명한다. 아쉽다.

하지만 인터넷에 말끔하게 찍힌 사진이 있으니 그것을 확인하면서 궁금증을 풀어도 되겠다.

 (잘나온 사진을 퍼오고 싶었지만 저작권이 애매해서 네이버백과사전 사진으로 대신하겠다.)

 

(안용복의 업적을 새겨 놓은 동판화/출처 네이버과사전)

 

 

 

 안용복 장군 충혼탑이다. 1967년에 만들어 졌으며 2004년 새롭게 단장되었다.

이 역시 바로 앞에서 안용복의 강인함을 느껴보고 싶었지만 들어가지 못해 멀리서만 바라봤다.

충혼탑 뒷면에는 안용복 장군 충혼탑 건립문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안용복 장군 동상을 좀 더 멀리서 바라봤다. 멀리 있는 동판을 보기위해서. 하지만 안간힘쓰다 무릎만 까지고 말았다.)

 

 예전만해도 사당 앞까지 들어가서 동상 앞에서 사진도 찍었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출입이 금지되고 있었다.

그래서 동상과 사당을 가까이 가서 사진에 담아내진 못했다.

 하긴 예전부터 너무 개방되어 있어 어느 정도 보호관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긴 했다.

 하지만 몇 년 전엔 일반인도 출입이 가능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무료로 개방되어진 곳이라 관리상의 어려움으로 막아놓은 것은 이해하지만 아쉽긴 하다.

 CCTV까지 돌아가고 있다니 기분이 썩 좋지도 않고 제향일에는

특정인들에게 개방하더니 일반인은 참배도 못하나하는 아쉬움을 감출 수 없었다.

모두 독도를 아끼는 대한민국 사람인데 말이다. 탓하자면 공공시설이나 문화재는 훼손하는 무개념 사람들을 탓하고 싶다.

 

 사적공원까지 갔지만 안용복 장군이 독도를 지켜낸 업적에 대해 자세한 정보는 얻지 못했다.

안용복 장군의 업적이 대단하니 작은 표지판에 다 쓸 순 없었겠다 생각한다.

그래서 201155일 방영된 <KBS 역사스페셜 독도는 조선의 영토다-안용복에서 대한제국 칙령 제41호까지>

 참고하여 살펴보기로 하겠다. 참고보단 신세진다는 말이 맞겠다. 다큐 한편이 이렇게나 정보를 잘 정리해주다니.

 

 

 

 

 

 17세기 안용복은 일본으로 건너가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분명히 주장했다.

 부산시 수영구 옛 경상좌수 터에 안용복 사당이 자리 잡고 있다. 안용복은 독도를 지키는 수호자로 장군의 칭호를 받은 인물이다.

17세기후반 안용복은 일본으로 건너가 독도가 조선의 땅임을 알렸다고 한다.

역사는 그런 안용복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일본이 외면하고 싶어 하는 기록이다.

안용복 장군은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가장 중요한 근거라고 이야기되고 있다.

 어부였던 안용복은 장군의 칭호를 받을 만큼 독도를 지키기 위해 앞장섰다는 것이다.

 

 이런 안용복을 일본은 곱게 볼 리가 없다.

독도의 일본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학자들은 안용복을 한일관계를 방해하는 원흉이라고 유치한 발언을 하고 있다.

일본은 어떻게 해서든 안용복을 부정해야 했던 것이다.

 

 

 

 독도에서 가장 가까운 일본의 오키 섬, 오키 섬에 도착한 안용복 일행은 취조 당하게 된다.

그때 안용복은 일본관리들 앞에서 조선팔도지도를 꺼내 보이며 강원도에 울릉도와 독도가 속에 있음을 알렸다.

당시 울릉도는 죽도였으며 독도는 송도라 불리었다.

 그 현장은 2005년에 발굴된 무라카미 가문의 문서에 생생히 기록되어 있다.

 안용복의 증언을 검증할 수 있는, 조선왕조실록이 아닌 또 다른 문헌이라 의미가 있는 것이다.

 조선시대 이미 안용복은 두 섬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고 지키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돗토리 현의 공식문서 이나바지는 당시 상황을 세심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문서에서는 우산도는 일본말로 송도라 부른다고 기록되어 있다.

안용복이 말한 자산도는 우산도를 뜻하는 말이다.

그리고 우산도는 지금의 독도임을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

고로 우산도와 독도가 다르다는 일본 측의 주장은 근거가 없는 것이다

. 안용복은 당시 독도와 울릉도, 독도와 조선과의 거리를 구체적이고 단호히 언급하기도 했다.

 

 안용복은 일본으로 건너가기 3년 전, 독도에서 고기잡이를 하다가 일본어선에 납치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일본어민들이 국경을 넘어 불법조업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3년 후 안용복은 울릉도에서 조업 중인 일본어선을 만나게 된다.

안용복은 울릉도는 본디 우리 땅인데 왜인이 어찌 감히 경계를 넘어 침범하였는가.”라고 하자

일본어민들은 자신들이 독도에 산다고 답했다고 한다. 안용복은 독도역시 우리 땅임을 알리고 이들을 내쫓았다.

그리고 도주하는 일본어선을 일본까지 쫓아가 항의했다.

 

 

 

 일본은 일본어선의 왕래를 두고 독도를 일본이 먼저 지배했다는 증거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허가를 받고 국경을 넘은 것이며 이조차도 뇌물로 이루어진 것이다.

 울릉도 인근의 풍부한 해산자원이 탐이 났던 모양이다. 안용복이 아니었으면 일본의 울릉도 침범은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이후 안용복으로 인해 일본어민들은 두 번 다시 독도에 올수 없었다.

 

 안용복은 일본이 주장하는 대부분의 근거를 허물게 한다.

안용복은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대한민국의 영토임을 확인하는 명백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안용복: 안용복은 일본과 외교를 한 조선시대 어부출신이다. 조선 숙종 때 동래출신(현 부산시 수영구 수영동 부근) 어민으로, 경상좌수군절도사영의 수군인 능로군이었다. 왜관에 자주 드나들며 일본말을 익혔고 1697년 대마도주가 울릉도가 조선땅임을 확인하는 서계를 보냄으로써 조선과 일본 간의 울릉도를 둘러싼 분쟁을 일단락 시켰다. 울릉도와 독도 수호에 큰 업적을 세워 후세 사람들에 의해 장군이란 칭호를 받았다.](다음백과사전, 위키백과)

 

 

 안용복 장군 동상에서 흐르는 빗물이 안용복 장군의 눈물이라는 상상을 해봤다.

재난이 있을 때마다 우리나라는 이웃나라라고 도움의 손길은 멈추지 않았는데 그쪽은 보따리까지 뺏어가는 고약한 심보를 드러냈다.

역사가 아닌 소설을 쓰며 억지주장은 몇 백 년이 흘러도 멈추지 않으니 안용복 장군이 편히 눈감지 못할 것 같다.

 (방심하면 힘 있는 소설이 역사가 될 수도 있다. 우리도 진실이 약해지지 않도록 지켜야 한다.)

당시 조선이나 지금이나 독도 지키기에 힘쓰는 이들을 나라가 도와주지 않는 형국은 비슷하긴 하다.

독도가 위협받으면 우리의 바다, 동해까지 위협받는 것이다.

독도를 지키는 것은 우리의 바다를 지키는 것이다. 일본이 왜 그토록 독도를 침범했던가.

 바로 대한민국의 바다, 동해가 욕심났기 때문이다. 분명 독도는 우리 땅이다.

우리 땅인데 자꾸 우리 땅이라고 하는 것도 웃기다. 간단하고 자명한 사실인데 말이다.

다시 한 번 어부 안용복의 업적이 헛되지 않도록 독도에 대한 인식을 굳건히 새기자.

대한민국 동쪽에 있는 바다는 동해(East Sea)이며 독도는 우리 땅이다.

 

 

(참고: <KBS 역사스페셜 '독도는 조선의 영토다 - 안용복에서 조선칙령 41호까지'>, 수영사적공원 안내)

 

 

바다야 사랑해 3기 블로그기자 김상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