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모비딕>은 제목과 그 의미에 대해 듣고 꼭 한 번 보고 싶었던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개봉 때를 놓쳐 영화관에서 보지 못하고 이번 추석 연휴를 이용해서 봤는데요.
조금 아쉬움이 남는 영화였지만 그 의미는 꼭 한 번 되짚어 보고 싶었습니다.
때는 1994년 늦은 가을.
서울 근교 발암교에서 의문의 폭발사고가 발생합니다.
사건을 추적하던 사회부 기자 이방우는
어느 날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고향 후배 윤혁을 만나는데요.
그는 이방우에게 암호가 걸린 플로피디스크와 문서를 건네면서
발암교 폭파사건이 조작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아픈 딸을 위해 지방에서 올라온 손진기 기자,
똑부러지고 강단있는 여기자 성효관과 발암교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특별 취재팀을 꾸립니다.
하지만 취재를 방해하는 의문의 일당들로 인해 취재팀은 점점 위기에 처하는데요.
이 영화의 아쉬운 점이 바로 이런 부분들입니다.
취재를 방해하는 의문의 일당..
그리고 이들의 취재를 통해 서서히 정체를 드러내는 정부 위의 정부가 솔직히 너무 초라합니다.
방해하는 일당들의 행동이 조폭들이 하는 짓과 다를 바가 없고,
일식집에 모여 정부를 제 손안에 쥐고 흔드는 그림자 정부라는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마치 조기축구회 회식 자리를 방불케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비딕'에 대해서는 꽤 의미가 깊습니다.
영화사에서는 이 '모비딕'에 대해서 모르는 20대가 너무 많아
제목 변경을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다는 기사도 많이 나왔었죠.
여기서 <모비딕>은 미국의 작가 멜빌이 지은 해양소설의 제목입니다.
Moby는 큰, 거대한. 이라는 뜻이고요.
Dick은 놈, 녀석. 이라는 조금 나쁜 의미의 지칭 용어입니다.
한 마디로 '큰 놈'을 가르키는 '모비딕'.
멜빌의 소설 내용은 머리가 흰 거대한 고래에게 한쪽 다리를 잃은 에이햅의 복수담입니다.
포경선 피쿼드호의 선장 에이헙은 고래에 대한 복수심으로 동료들의 충고도 아랑곳 않고
백경을 찾아 대서양에서 희망봉을 돌아 인도양으로, 태평양으로 항해를 계속합니다.
어느 날 돌연 모비딕이 나타나 3일이나 사투를 계속한 끝에 선장은 작살을 명중시켰으나
결국 고래에게 끌려 바다 밑으로 빠져들어가고 피쿼드호도 침몰합니다.
이 비극의 내용을 단 한 사람 살아남은 선원 이슈멜이 전하는 형식의 소설이죠.
한 때 포경선을 탄 경험이 있는 멜빌은
작은 배로 거대한 백경과 싸우는 웅장한 광경을 잘 묘사했는데요.
발표 당시에는 진가를 인정받지 못하였지만, 20세기에 이르러 재평가되어
격조 높은 서사시적 산문의 아름다움이 찬사를 받으며 세계문학의 걸작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모비딕>이 영화 '모비딕'과는 무슨 상관일까요?
이 영화의 박인제 감독은 "영화 속의 '모비딕'은 사건의 중요한 장소임과 동시에
거대한 악을 상징하는 중의적인 뜻이 있다" 고 설명합니다.
실제 1990년, 영화 속에서 정보를 제공하는 윤혁 이야기의 모티브가 된 사건이 있었다고 합니다.
바로, 당시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 놓은 윤석양 이병 양심선언 사건인데요.
당시 보안사에서 근무하던 윤이병은 민간인 사찰 대상 목록이 담긴 디스크를 가지고 탈영해
당시 정부의 민간인 사찰을 밝혔습니다.
대상으로는 김대중, 노무현 전직 대통령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하는데요.
이를 모티브로 삼은 감독은 정부 위의 정부가 있다는 가정을 세우고
거대한, 그림자 정부를, 거대한 모비딕에 비유한 것이죠.
또 영화 제목 뿐만 아니라 윤혁이 건네는 라이터에 그려진 고래 그림의 정체.
바로 호프집 '모비딕' 또한 윤석양 이병 양심선언에서 그 모티브를 찾을 수 있습니다.
실제 보안사가 민간인 사찰을 위해
서울대학교 앞에 모비딕이라는 이름의 카페를 위장 경영했다고 합니다.
어째 영화보다 현실 속 이야기가 더 무섭지 않나요?
주인공들은 있는 힘을 다해 진실을 향해 달리지만
결코 그 정체는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달려간 몇몇 존재에게 그 일부만을
손으로 만질 수 있게 허락하는 모비딕처럼 ..
거대해서, 너무나도 거대해서 결코 한 눈에 볼 수 없는 무서운 진실에 대한 이야기.
포기하지 않고 모비딕을 향해 파도를 헤치며 달려간
에이헵의 이야기가 다시 한 번 읽고 싶어지는 의미있는 영화였습니다.
'블로그 기자단(1~10기) > 3기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얼음바다에 거북선이 떴다, 에코모빌의 남극횡단 도전기 (0) | 2011.09.22 |
---|---|
오메가-3와 비타민 E가 풍부한 '연어 베이컨롤/베이컨 연어롤' (0) | 2011.09.21 |
콩가루가 뿌려진 샐러드로 비벼 먹는 송어회 맛에 반하다 강원양어장 (0) | 2011.09.20 |
일본드라마로 만나는 가쓰오부시 이야기 (0) | 2011.09.20 |
낚시하는 물고기, 슈퍼 어부 씬벵이 이야기 (0) | 2011.09.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