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사람들은 옛날부터 한라산 자락(제주에서는 중산간지역이라고 부른다)의 밭에서 일을 하면서 더위를 이기기 위하여 육지에서 새참으로 만들어 먹는 식초를 넣은 냉국과는 달리 된장을 얼음물에 푼 오이냉국을 자주 먹는다. 그리고 바닷가에 살고 있는 제주사람들은 제주도를 대표하는 바닷물고기인 자리돔을 가지고 자리물회나 자리강회를 자주 요리하여 먹는다. 자리회나 자리강회도 물론 된장을 기본양념으로 한다. 더위로 인해 생기는 탈수를 보충하기 위한 지혜일 것이다.
이처럼 자리돔은 제주도를 대표하는 바닷물고기이자 제주사람들의 생활속에 깊게 자리 잡은 바닷물고기이다. 그런데 최근 제주도에서는 자리돔의 인기를 제치고 1위로 나선 또 다른 바닷물고기가 있다.
제주도의 향토음식점에서 이 바닷물고기를 처음 본 사람은 매우 의아해한다. '정말 이 물고기를 먹는단 말인가' 하고……. 겉모양이나 색깔만으로 보아서는 유리수조에 넣고 키우는 관상어가 아닌가 하고 처음에는 먹기를 꺼려하는 사람도 많다.
이 물고기의 정체를 밝히면 다음과 같다.
이름은 어렝이와 코생이. 표준말로는 놀래기, 분류학적으로는 농어목 양놀래기과에 속하며 제주도에는 여러 종류의 놀래기가 서식하는데 대표적인 종이 어렝놀래기, 황놀래기, 용치놀래기, 참놀래기 등이 있으며 여기서 언급된 4종이 주로 식용으로 이용되고 있는 대표적인 종으로서 그 크기는 성체 기준으로 보았을 때 20~25cm이고 13cm 전후의 것도 제주도의 향토 음식의 재료가 된다. 체색은 아주 화려하다. 적색, 청색, 녹색, 브라운색, 오렌지색, 노란색 등의 아주 화려한 무늬나 선을 만들고 밝은 계통의 바탕체색과 조화를 이루면서 때로는 네온사인과 같은 푸른 광택을 내기도 한다. 실제 이 종류의 물고기는 애완동물시장의 중요한 부분인 해수관상어 시장에서 랏세(Wrasse)라고 불리면서 그 화려함으로 인하여 인기가 높은 해수관상어이기도 하다.
전 세계의 대형 관람형 수족관에 가 보면 놀래기(랏세) 종류만으로 하나의 전시수조를 꾸민 예는 거의 없지만, 대형 수족관이나 산호초를 연출한 전시용 수조 속에는 분명 놀래기에 속하는 종이 포함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해수관상어로서 랏세 라고 불리는 제주도의 놀래기는 관상어 수조를 구성하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녀석이다. 뿐만 아니라 놀래기류는 해양생태계에서 발생하게 되는 유기물을 미생물이 분해하기 전에 딱딱한 근육을 강한 이빨로 잘근잘근 씹어 먹어줌으로서 해양생태계를 깨끗하게 유지시켜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면 어떤 녀석이 어렝이이고 어떤 녀석이 코생이인지 알아보자. 제주도에 와서 어렝이와 코생이를 구분할 줄 알면 식당에서 전문가로서 목에 힘을 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어렝이나 코생이로 불리는 제주도 주변 해역의 놀래기류는 너무 변화무쌍(變化無雙)하다. 주변에서 해양생물학의 전문가들도 정확하게 분류하기가 힘들 정도로 그 모양이나 체색의 변화가 많거나 심하여 구분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제주도 바다 주변에 살고 있는 토착민은 어렝이와 코생이를 명확하게 구분하여 이름 짓고 있지만 이 바닷물고기를 가지고 요리를 하는 식당에서는 어렝이와 코생이를 함께 어렝이라는 대표명으로 선보이고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본인도 어렝이와 코생이를 아주 확신있게 구분하는 것은 힘이 들기에 제주대학교에서 제주도 주변 어류의 분류에 한 평생을 바치시고 지금은 다른 세상에 계시는 고 백문하(白文河)교수님이 남기신 제주도해산어류도감(濟州道海産魚類圖鑑, 1994)에 잘 설명된 어렝이와 코생이를 구분할 수 있는 특징을 아래에 옮겨 본다.
영명은 Bambooleaf wrasse이며 우리나라 남해안의 일부 지역과 제주도와 일본에 분포한다. 암수의 체색이 달라 암컷은 붉은색이 강하고 수컷은 푸른색이 강하다. 암컷이 수컷으로 성전환하는 것이 알려져 있고 체색은 주변 환경 등에 의하여 변화가 심하다.
물회로서 인기가 높아가는 제주 바닷물고기 어렝이
(황놀래기, 백문하, 1994, 濟州道海産魚類圖鑑
어렝이와 함께 제주 바닷물고기를 대표하는 코생이
(참놀래기, 백문하, 1994, 濟州道海産魚類圖鑑)
참놀래기(학명 Halichoeres tenuispinnis) 제주도 방언으로 코생이, 콜생이 또는 코맹이라고 한다. 영명은 Motleystripe rainbowfish라고 하며 영명에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체색은 밝고 화려한 무지개색을 띄는데 일반적으로 붉은색과 초록색 계통의 여러 줄무늬가 있으며 무늬가 복잡하다. 어렝이처럼 암컷이 수컷으로 성전환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성숙한 암컷과 태어날 때부터 수컷인 개체의 체색은 담녹갈색이다. 그리고 암컷에서 수컷으로 성전환된 개체는 암적색 바탕에 초록색 줄무늬가 있다. 우리나라의 남부와 제주도, 일본, 필리핀 등지에 서식한다.
앞에서 잠시 언급한 것처럼 자리돔 만큼 제주인에게는 친근한 물고기가 어렝이와 코생이이다. 제주 주변의 해조 숲이나 돌 틈에 낚시를 드리우면 톡 톡 톡 하는 풍부한 입질로서 언제든지 어렝이와 코생이를 잡을 수 있다. 제주도 사람들은 잡은 어렝이를 가지고 매운탕이나 구이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먹기도 하지만 거의 대부분 물회로서 요리한다. 자리물회처럼 된장이 기본양념이 되고 식성에 따라 여러 가지 야채를 함께 넣어서 차가운 얼음물과 함께 섞는다. 여기서 맛을 설명하지는 않는다. 단지 제주도 사람들이 제주도를 대표하는 향토음식으로서 자리물회를 내세운 가운데 또 하나의 별미로서 그리고 입 맛나는 음식으로서 어렝이 물회를 사랑한다(나도 너무 좋아한다). 그 맛이 궁금하시다면 한 번 경험해 보시기를 적극 추천한다.
여기서 잠깐 어렝이나 코생이는 제주도 사투리인데 이것이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는 확실히 이야기 할 수 있는 주변인을 만날 수 없었다. 단지 오랜 옛날부터 어렝이와 코생이라고 제주도 사람들이 불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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