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기자단(1~10기)/3기

옛날 옛적, 최치원과 해운대 이야기

NIFS 2011. 12. 6. 13:47

 

옛날 옛적, 최치원과 해운대 이야기 

 

 

 

 

 

 

여름의 뜨거운 열기가 물러가고 차가운 겨울바람이 서서히 불어오는 해운대.

흥분히 가신 겨울바다에 서서 차분해진 마음으로 해운대가 들려주는 옛 이야기를 들어볼까 합니다.

 

 

 

해운대는 예로부터 대한 8경중에 하나로 손꼽히던 명승지.

또 최치원과의 해운대의 인연을 쫓아 시인묵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최치원과의 해운대의 인연은 ‘해운대’라는 이름의 유래와도 닿아있을 만큼 깊습니다.

신라 말기 유교학자로 이름난 최치원이 어지러운 정국을 떠나, 합천 가야산으로 향하던 길에

해운대를 지나다 바다의 구름이 환상적인 풍경에 심취해

동백섬 남쪽 벼랑의 넓은 바위 위에 자신의 호 ‘해운(海’雲)‘을 따서 쓴 ’해운대‘라는 세 글자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해운대란 명칭도 바로 여기서 유래한 것!

 

 

 

 

현재까지도 그 인연을 기리어 등대 뒤쪽 돌계단을 따라 올라간 동백섬의 중심에

최치원 선생의 동상과 기념비가 세워져있습니다.

 

 

<비 오는 가을밤>(秋夜雨中), <가야산 독서당에 적다>(題伽倻山讀書堂)와 같은 최치원의 한시는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소개되어 누구나 한 번쯤은 그의 글을 접해보았을 뿐만 아니라,

12살이란 어린 나이에 당나라에 유학을 떠나 7년 만에 빈공과(賓貢科)에 합격한 일은

이미 잘 알려진 일화입니다.

  

 

 

하지만 그가 어떻게 해운대까지 와서 그런 명글귀들을 남기게 되었나를 살펴보면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그는 당나라에서 젊은 나이에 출세를 하게되고 28세에 고국에 돌아오지만

신라 진골귀족들의 질투를 입어 태인, 함양, 서산 등 여러 고을 태수로 나돌게 됩니다.

 

신라 하대로 이를수록 진골 씨족 신권 독재체제로 인해 끝없이 추락하는 시대 상황 속에서

최치원을 비롯한 6두품 출신들은 도당 유학생으로 새바람을 일으키려 하지만

최치원의 개혁안인 <시무10조>는 되려 귀족들의 노여움을 사고말죠.

 

최치원은 결국 신라 왕실에 대한 실망과 좌절감으로 40여세 장년의 나이에

관직을 버리고 자유롭게 방랑을 하며 명문과 명시를 남깁니다.

 

그의 방랑코스는 서라벌에서 부산 해운대, 마산 월영대, 가야산 해인사, 지리산 청학동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그의 발자취는 특히 조선시대로 들어오면서 온갖 시인묵객들의 발길을 끌어 모으기 시작합니다.

 

 

한국문학사의 맨 앞에 우뚝 서 있는 대문학가, 최치원.

하지만 그의 작품들은 당연하게도 모두 한문으로 쓰여 있어

그 깊이와 아름다움을 일반인들이 즐기기가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특히 산문 작품은 한문학 전공자들도 어려워하는 글로 정평이 나 있다고요.

하지만 한글로 다시 쓰인 그의 작품 <새벽>을 통해 그의 작품 세계를 잠시나마 엿보겠습니다.

 

-새벽-

최치원

 

“ (전략)

밤이 세상을 에워쌌다가 / 천지가 밝아 오네.

천 리 밖까지 푸르고 아득하며 / 온 사방이 희미하네.

요수에 붉은 노을 그림자 뜨고 / 이따금 들리는 종소리 자금성의 소리를 전하는 듯.

임 그리는 아낙이 자는 깊은 방의 / 비단 창도 점점 밝아지네.

시름에 겨운 이가 누운 옛집의 / 어둔 창도 밝아 오네.

잠깐 사이 새벽빛이 조금 뚜렷해지더니 / 새벽 햇살이 빛을 발하려 하네.

줄지은 기러기 떼 남쪽으로 날아가고 / 한 조각달은 서편으로 기우네.

장사차 홀로 나선 사람 일어났으나 / 여관 문은 아직도 닫혀 있네.

외로운 성에 주둔하는 백전(百戰)의 용사들에게 / 호가소리는 아직 그치지 않네.

다듬이 소리 쓸쓸하고 / 수풀 그림자 성그네.

사방의 귀뚜라미 소리 끊어지고 / 먼 언덕에는 서리가 하얗게 내렸네.

단청 화려한 집에는 / 푸른 눈썹 그린 미인이 있고

잔치 끝난 누각에는 / 붉은 촛불만 속절없이 깜박이네.

상쾌한 새벽이 되니 / 내 영혼 푸른 하늘처럼 맑아라.

온 세상에 밝은 해 비치자 / 어둠이 바위 골짜기로 사라지네.

천 개의 문과 만 개의 창이 비로소 열리고 / 넓은 천지가 활짝 펼쳐지누나.“

 

 

동해에서 떠오르는 해를 기다리며 쓴 최치원의 <새벽>.

성을 지키는 용사들, 여관의 장사치들, 여인네의 다듬이 소리에서 좀처럼 밝아오지 않은 새벽의 암담함,

그리고 세상을 등지고 방랑하는 그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밤을 뜬 눈으로 지새우며

새벽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그의 마음을 잘 느낄 수 있습니다.

 

세상을 버릴 수 밖에 없었던 그였지만 그 누구보다 날이 밝기를 기다렸던,

자신을 알아줄 세상을 고대했던 외로운 불운의 천재 최치원의 절절한 절망이 가슴 아프게 와 닿습니다.

  

 

 

부산시는 지난 3월 <최치원 선생 유적지>를 성역화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풍류를 아는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사랑한 해운대.

한때의 관광객들의 눈을 사로잡기 위한 단순한 관광 상품용이 아닌

옛 문인들의 시와 그림과 함께 해운대의 또 다른 얼굴을 만날 수 있도록

진정한 품격을 갖춘 명소로 조성되길 간절히 바래봅니다.

 

전국의 피서객이 물러가고 영화를 사랑하는 시네필들이 떠난 겨울바다, 해운대.

해운대를 사랑한 옛시인묵객들의 작품을 통해 차분한 마음으로 또 다른 바다를 만나러 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