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잠깐 돌려보다 올드한 화질 상태와
해설 한 마디 덧붙여지지 않은 채 이어지는 따분한 어촌마을 풍경에
일찌감치 꺼버렸던 일본 다큐멘터리 <노인과 바다>를 어젯밤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도통 잠이 오질 않아 수면제용으로 고른 다큐멘터리였는데요.
지루하기는 커녕, 마치 그리운 할머니 댁에 다녀온 듯한
이상하게 묘한 울림이 있는 영화였습니다.
다큐의 배경은 오키나와 '요나구니'라는 이름의 섬.
일본 남해의 관문으로 '흑조'라고 불리는 빠른 일본해류가 지나는 지역인데요.
영화는 요나구니 바다의 남자, 82세 바다 어부 시게루 할아버지의 일상을 조용히 따라 흐릅니다.
아침부터 바다에 나갈 준비로 한창인 시게루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쪽배 한 척과 낚시줄과 작살로 청새치를 뒤쫓는 동안
늙은 아내는 남편의 무사한 귀가와 풍어를 기도합니다.
마침내 일을 마치고 섬으로 돌아오는 할아버지.
하지만 잡힌 녀석들은 저녁거리 잔챙이 뿐입니다.
할머니는 하루종일 바다에 나가 고생하신
할아버지의 따뜻한 저녁식사를 위해 정성껏 생선을 손질합니다.
할아버지는 내일을 위해 도구 하나하나를 손질해두는 것을 잊지 않습니다.
할아버지의 유일한 도구인 낚시줄을 정성스레 돌보는 손에서 세월의 힘이 느껴집니다.
이 다큐의 감독 존 주커만은 2개월 일정으로 어부의 생활을 찍기위해 오키나와로 왔지만
시게루 할아버지의 삶에 매료되어 무려 2년 간을 섬에 머물렀다고 합니다.
할아버지가 청새를 잡는 장면 역시 2년이 지나서야 촬영을 할 수 있었다고합니다.
할머니의 정성스런 기원과 기다림 끝에 드디어 할아버지는
거대한 청새치를 만납니다.
낚시줄에 걸려 물 위로 튀어오르는 청새치.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녀석을 시게루 할아버지는 낚시줄 하나에 의지해
오로지 혼자의 힘으로 싸워내야합니다.
몇 시간의 대치속에서도 녀석은 좀처럼 힘을 잃지 않고
할아버지는 몇 차례에 위험에 맞닥들이기도 하는데요.
그 와중에도 82세의 나이로 맨손으로 청새치를 제압하는
시게루 할아버지의 모습은 정말 놀라웠습니다.
할아버지의 만선소식에 몰려든 어시장 사람들.
매일 할아버지 마중을 나오던 할머니도 청새치를 보고 한달음에 달려옵니다.
무게를 달아보니 무려 171kg의 거구!
청새치 중에서도 큰 편에 속하는 녀석입니다.
그날 저녁, 가족들, 그리고 오랜 친구와 함께
따스한 밥상에 둘러앉은 노인의 뺨에는 어린아이같은 홍조가 어렸습니다.
오랜 친구의 축하노래에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추고는
쑥쓰럽게 웃어보이는 할아버지의 얼굴이 잊혀지질 않습니다.
<워낭소리>를 봤을 때의 기분이라고 해야할까요..
영화를 보고 있다기 보다는 제가 직접 작은 어촌 마을로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었습니다.
물론 관광을 하러 돌아다니는 여행이 아니라,
털레털레 슬리퍼를 끌고나가 노인이 바다로 떠나는 모습을 매일매일 지켜보고 온 기분.
잔뜩 불만스러운 듯 따분한 얼굴로 있었지만, 사실은 마음 속 깊이 위안을 얻고 온 기분.
뭐가 그리 급했는지 하루종일 사람들에게 빨리빨리를 외쳐댔던 요즘.
정말 오랜만에 마음이나마 쉴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영화 속 상황에 대한 부가설명이 곁들여지는 나레이션도 없어 참 좋았습니다.
정말 할아버지와 단 둘이 배를 타고 나가 말없이 한참을 바다를 바라보기도 하고
무엇을 하는 건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묵묵히 그물을 꿰고 낚시바늘을 손질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 여행.
마을의 어시장에서 물고기를 손질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하고
어촌마을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아무 방해없이 지켜볼 수 있는 것도 참 좋았습니다.
아니, 그런 영화를 뭐하러 봐? 하실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다큐멘터리는 어울리지 않게 엄청난 흥행성적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노인과 바다>는 지금까지 100만 관객을 사로잡은
일본의 다큐멘터리 명가 '시그로'의 작품으로
당시 일본 다큐멘터리 역사상 최고의 흥행성적을 기록했다고요.
오키나와의 푸른 바다와 싸우는 노인의 기나긴 여정 다큐멘터리 <노인과 바다>
80이 넘은 바다 사나이가 자신의 삶을 통해 보내오는
따뜻한 위로와 격려가 궁금하신 분들은 꼭 한 번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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