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발목까지도 채 차지 않는 바다에서
돌문어를 잡기 위해 낚시대에 미끼를 흔들고 있는 남자.
하지만 꿈쩍도 않는 돌문어.
이렇게 얕은데 그냥 손으로 잡아도 될 것을 저렇게 흔들고 있습니다.
그래도 반나절을 흔들고 있으니 드디어 문어가 움직여 미끼를 덥썩 뭅니다.
하루종일 기다려야 겨우 한 마리 잡을까 말까한 낚시 방법은 참 미련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별로 개의치 않습니다.
“할아버지도 몸이 피곤할 때까지 기다려야만 한 마리 잡을 수 있다고 말해줬습니다. 저 역시 기다리는 것에 익숙합니다.” 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는 이들의 얼굴 위로 행복이 비치자 모든 것을 자연에 내맡긴 태평양에서 흐르는 시간이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솔로몬 제도의 작은 섬, 산타카탈리나 섬의 이른 새벽.
그런데 해변에 도착하자마자 진기한 풍경이 우릴 반깁니다.
남녀가 해변을 양쪽으로 나눠 공동화장실로 쓴다고 합니다.
탁 트인 아름다운 태평양을 바라보며 볼일을 보는 기분은 대체 어떨까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인데요.
파도가 배설물을 치워주고 닦기도 편해 좋다고 합니다.
바로 옆에선 누군가 상쾌한 아침세수를 하네요.
또 다른 한 쪽에서 그릇을 닦고 말이죠.
상하수도같은 현대적시설이 이 섬엔 없습니다. 바다가 화장실이고 세면장이죠.
물이 귀한 섬이라 식수는 빗물을 받아놓고 공동으로 사용합니다.
산타카탈리나 섬에는 1000년 전부터 주민들이 이주를 해왔는데
지금은 아메아, 아타와라는 두 부족이 약 1000명 정도 살고 있습니다.
새벽에 바닷가에서 만난 모리스의 집.
이섬에서는 힘이 많이 들어가는 부엌일은 남자들이 돕습니다.
모리스와 아들이 코코넛을 갈 준비를 합니다.
모리스가 작업을 시작하자 이웃집에 살고 있는 모리스의 사촌들도 합세를 합니다.
한 자리에 모여 코코넛을 갈면 재미있고 시간도 잘 갑니다.
코코넛을 간 껍질은 아이들의 군것질거리가 되고
또 가축들의 별미가 됩니다.
다른 한 쪽에선 빵나무를 열매를 갈고 있습니다.
원주민들의 주요 식량으로 감자맛이 난다고 하네요.
섬사람들은 대부분 대가족을 이뤄 삽니다.
모리스는 추장의 아들이지만 삶은 지극히 소박합니다.
시간만 나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함께 즐겁게 먹고 있는 이 것.
비틀넛과 비틀넛 잎, 라임. 섬에서 유일하고도 최고의 군것질 거리라고 합니다.
라임은 소라나 산호를 태워 갈아만든 석회가루.
비틀넛은 태평양 원주민들이 즐겨 먹는 기호식품인, 빈랑나무입니다.
비틀넛을 씹은 다음 라임을 찍어 먹으면 단맛이 나면서 입안의 화해진다고 합니다.
씹을수록 입안이 빨개지는 게 재미있죠?
이섬의 주식은 얌과 고구마 바나.
함께 수확한 바나를 공동으로 나눕니다. 이섬에선 별로 니것 내것의 구분이 없습니다,
바나는 보통 껍질을 벗겨 구워먹고 워고시아 축제 때는 특별히 푸딩으로 만들어 먹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섬에서 바나의 수확은 그 어떤 것보다 의미를 갖습니다.
카탈리나섬 사람들은 바나가 익어서 수확이 끝났을 때를 새해의 시작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의 새해는 대략 5월 말이 된다고 합니다.
바나의 수확과 함께 한 해가 끝나고 내일이면 새해가 되는 것입니다.
공동으로 나눈 바나로 음식을 만들기 시작하는 모리스 부부.
새해맞이를 위해 특별히 수수구라 부르는 푸딩을 만드는 중입니다.
아침에 갈아놓은 빵나무 가루와 바나를 넣어 반죽을 하고
코코넛 가루를 푼 물에 뜨거운 돌을 넣어 데웁니다.
그런 다음 코코넛물을 반죽에 넣고 치대면 되는 것이죠.
이제 오늘 밤 시작될 새해 축제 워고시아에서 쓸 소라를 씻을 시간.
이곳 사람들은 소라부는 소리가 병을 쫓아내는 힘이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소라소리로 새해를 시작하기 위해 준비를 하는 거죠.
이제 한 번도 세상에 공개된 적없는 특별한 축제가 공개됩니다.
자, 이제 한해 마지막 날의 축제가 시작됩니다.
새해 첫날을 워고시아라고 하는데 이는 ‘신에게 함께 기도하자’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자정 무렵 전기가 없어 더 캄캄한 밤,
어른들이 모여 꿀소라를 불어 워고시아의 시작을 알립니다.
그리고 코코넛 막대를 챙겨든 사람들이 마을 광장을 가득 채웁니다.
추장이 준비 시작! 이라는 의미의 에후나~를 외치자
마을사람들이 일제히 괴성을 지르고 막대를 힘껏 땅에 내려치며 달려나가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코코넛 나무로 땅을 때리는 건 섬에서 병을 쫓아내는 의식.
지구상 어디를 가도 새해의 의미는 모두 같습니다.
건강을 기원하며 형제, 친구들과 음식을 나눠먹는 것이죠.
이제 각자 집에서 정성스레 만든 설음식, 수수구를 내놓습니다.
그런데 명색이 최대 명절이라는데 떡 벌어지는 상은커녕
바나로 만든 푸딩에 생선 한 마리가 전붑니다.
소박하지만 집집마다 정성스레 준비해온 음식을 사이좋게 나눠먹습니다.
단 남자끼리, 여자끼리, 아이들끼리. 나뉘어서 말이죠.
그렇게 워고시아의 밤이 깊어갑니다.
다음날 아침 새해 첫날.
모리스는 아침부터 얼굴에 검댕이 칠을 하고 잎으로 치장을 합니다.
마을광장은 이미 남자들로 가득합니다.
아이어른 할 것없이 마을에 큰일이 벌어진 듯 나무창을 들고서 괴성을 지르니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이제부턴 바다에서 사내들의 창던지기 싸움, 아리파탕가가 시작됩니다.
천년전부터 마을 선조들은 외적의 침입에 창을 들고 싸웠는데 그 전통이 지금까지 내려온 것이죠.
이 싸움은 성인인 형제들끼리만 가능합니다.
누군가 다쳐도 쉽게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라고 하네요.
바나나 잎의 여인들을 세워놓고 두 추장의 기도가 이어지는데요.
그 기도가 참 소박합니다.
마을 사람 모두가 먹을 수 있을 만큼 코코넛 열매가 풍성하게 열리길 빌고,
낚시도구를 돌봐주시고 마을 사람 모두가 먹을 수 있는 물고기를 잡을 수 있게 해달라고 빕니다.
이젠 바나나잎의 여인들이 돌을 던지며 달려갑니다.
이것은 몸안의 나쁜 기운을 던져버린다는 의미. 이렇듯 축제의 모든 행위들은 병과 관련이 있습니다.
산타카탈리나섬에는 없는 것이 많습니다.
화장실도 없고 전기도 없고 신발도 없고 아이들이 먹는 그 흔한 과자도 없습니다.
또 태평양에서 섬에 산다는 것은 자연의 시간에 모든 것은 맡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멀고먼 항해, 오랜기다림은 태평양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것이죠.
하지만 산타카탈리나 섬 사람들은 마냥 즐겁고 행복합니다.
천천히 흐르는 태평양의 시간은 천년의 지혜로 이어온
섬 사람들을 한 번도 저버리지 않았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다리면 언젠가는 답을 준다는 것을.
그래서 산타카탈리나섬은 그들에게 행복한 낙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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