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기자단(1~10기)/3기

콜럼버스의 잃어버린 함대를 찾아서

NIFS 2011. 12. 28. 11:01

 

 

 

 

1494년,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신세계로 돌아왔습니다.

이번 항해의 주어진 임무는 신대륙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부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콜럼버스가 세운 이 도시는 4년 만에 사라지고

그의 배와 선원들도 기나긴 세월의 무덤 속에 매장되고 맙니다.

 

 

 

4년 동안, 이 땅에선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지금부터 제국건설 역사의 잃어버린 한 페이지였던 이사벨라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2011년, 내셔널지오그래픽의 다큐멘터리 <콜럼버스의 잃어버린 함대>는

콜럼버스의 첫 식민지, 이사벨라가 멸망한 원인을 두 팀의 고고학자들이 찾아 나섭니다.

 

 

 

첫 번째 팀은 지금까지 수천 척의 난파선을 조사해온 찰리 비커.

500여년 전, 콜럼버스가 잃어버린 7척의 배들은 콜럼버스가 지휘했던 가장 큰 함대의 일부로,

당대의 타임캡슐로 불리고 있지만 지금까지 단 한 척도 발견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바다에서의 작업과 동시에 육지에서도 연구가 진행됩니다.

 

 

개척 초기, 신세계에서 죽어간 최초의 유럽인들의 비밀을 풀기 위해

고대 인류의 뼈를 연구하는 생물고고학자가 투입되었습니다.

 

 

 

역사는 남성 중심적이고 정치를 위주로 한 공식적인 기술만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뼈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다르죠. 뼈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뼈에는 식습관이나 생활방식 직업에 대한 정보가 담겨있어서

이사벨라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를 가감없이 들려주었습니다.

 

 

그 속에는 콜럼버스가 남긴 기록에는 누락되어 있던,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바로 이사벨라의 무덤에서 아프리카인들의 전형적인 특징이 있는 유골과

여성의 유골이 발견된 것. 콜럼버스의 기록에는 없는 사실이었습니다.

백인 남자들 이름만 올라있는 역사적 기록들과는 상반되는 결과입니다.

흑인들도, 그리고 여자들도 콜럼버스와 함께 배를 탔고 이사벨라에 도착했습니다.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함대가 미지의 바다를 건넌지 채 2년이 안된 1494년.

그는 희망과 야심을 품고 불길한 두 번째 항해를 시작합니다.

그의 선원들은 신세계에 도착해 큰돈을 벌 생각이었죠.

그것은 발견이 아니라 정복과 식민지 개척을 위한 항해였습니다.

 

 

1494년 1월 2일, 콜럼버스의 함대 17척이 이사벨라(오늘날의 도미니카공화국인 카리브해의 히스파뇰라섬)에 도착합니다.

 

 

 

토착민, 타이노족은 평생 본 적 없는 거대한 함선이 들어오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이들에게는 외계인의 출현과 다를 바 없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이사벨라는 견고한 성벽과 무기고, 교회, 대저택까지 갖춘

거대한중세도시가 될 예정이었습니다.

 

콜럼버스는 도시를 세우기 위해 목수와 선원, 군인, 석공은 물론

귀족과 사제까지 모두 1000여명을 데려왔습니다.

그리고 말과 돼지, 밀, 사탕수수, 총을 신세계로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콜럼버스는 그걸로는 부족하다는 걸 알고있었습니다.

 

 

 

그리고 토착민인 타이노족의 노동력을 활용하기 시작하죠.

이곳에서 수 천년동안 살아온 타이노족은 인구도 100만이 넘었다고 합니다.

비옥한 땅 위에서 유럽과는 다른 작물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콜럼버스에겐 그들이 꼭 필요했습니다.

 

처음에는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습니다. 그들은 음식을 나눠주고 어울렸죠.

 

 

그렇게 아메리카 최초의 도시, 최초의 교회, 초최의 미사, 최초의 무덤이

이사벨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494년 3월. 콜럼버스가 식민지 건설을 시작한지 2개월이 남짓 지나자

이제 원래 목적이었던 황금을 구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금은 식민지 성공에 필수적인 자원이었습니다. 당시의 경제이자 제국의 연료였죠.

콜럼버스는 황제에게 비스케이 철강보다 많은 황금을 보내겠노라고 서한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타이노족의 안내로 내륙의 산과 강을 조사합니다.

 

 

 

 

"황금은 보물중에 으뜸이다. 황금을 가진 자는 모든 것을 가진 자이며 심지어 천국에 이를 수 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일기

 

 

초기에는 성과가 적지 않았지만 그 뿐이었습니다.

금은 원하는 만큼 나오지 않았고 타이노족과 이주민의 관계는 조금씩 틀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하나의 사건이 이사벨라의 몰락의 시간을 앞당겨옵니다.

 

 

 

그날은 세상에 잘 알려진 1495년 6월. 사나운 폭풍우가 섬을 강타합니다.

타이노족은 그것을 허리케인이라고 불렀죠. 타이노족은 고지로 피신했지만

경험이 없는 이주민들은 평생 처음만나는 공포 앞에 몸을 웅크렸습니다.

 

 

결국 대서양을 건너온 튼튼한 배들이 침몰하기 시작합니다.

콜럼버스의 기함을 비롯한 최소 6척의 배가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고

이후 다시는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유토피아에 대한 희망은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농사도 잘 안됐고 모든 게 지지부진했습니다.

 

 

 

하지만 콜럼버스에게 이보다 더 큰 문제는 황금이 부족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결국 콜럼버스는 귀금속 대신 타이노족을 노예로 붙잡아 식민지의 주수입원으로 삼았습니다.

 

타이노족 1600여명을 사로잡아 스페인에 노예로 팔았고

나머지는 이곳에서 이주민들의 노예로 살게 했습니다.

 

 

노예가 아닌 원주민들은 또 다른 고통을 당했습니다.

 

신세계 최초의 세금이 14세이상의 모든 남성에게 부과된 것이었습니다.

각자 할당된 금을 가져오지 않으면 가혹한 처벌이 잇따랐습니다.

스페인 사람들은 타이노족으로 무시하고 학대했습니다.

타이노 여자들을 탐냈고 추장들은 분노했죠. 결국 양측의 관계는 협력자에서 적으로 변해갑니다.

 

 

콜럼버스는 제국의 이름 아래 폭군이 되어갔고, 꿈의 땅 이사벨라는 악몽이 되고 맙니다.

 

 

충돌은 시간문제였습니다. 결국 타이노족들은 저항했고 스페인 사람들 역시 질 수 없였죠.

하지만 이 싸움은 사망자를 낸 전쟁이었을까요?

 

 

 

고고학자들은 이사벨라에서 발굴한 뼈를 조사합니다.

사인을 밝히려면 가능성을 하나씩 제거해야했습니다.

 

 

 

 

결과, 이주민들은 젊었습니다.

45세 이상은 드물었고 대부분 30세 이하였습니다.

뼈도 튼튼해 중노동을 감당할 수 있었던 젊고 건강한 사람들이었죠.

하지만 이 개척자들의 5분의 1은 4년 안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것은 대규모 전쟁에서나 나올 수 있는 통계라고 합니다.

 

 

 

그리고 유골을 조사한 결과 타이노족과 이주민의 전쟁은 이들의 사망원인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자료들이 타이노족과 이주민의 충돌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뼈에는

그런 흔적이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폭력적인 사태의 증거와 심각한 외상의 흔적은 전혀 없었습니다.

 

 

이사벨라의 몰락에는 많은 원인이 있었지만 가장 큰 원인은 적응에 실패한 것입니다.

 

1496년 이주민들은 시련에 봉착합니다.

작물은 자라지 않고 금도 나오지 않는데다 생필품까지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음식을 밀 1컵, 썩은 베이컨 1조각, 콩 한 줌이 하루배급량이었고

주민들의 불만이 쌓이기 시작합니다. 극단적인 상황에서 절망과 고통에 쌓여갔습니다.

 

 

 

 

 

이주민들을 덮쳤던 고통의 증거가 뼈에 남아있습니다.

대부분 비타민C 결핍으로 괴혈병을 앓고 있었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주민들은 타이노족이 먹는 음식을 먹지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이주민은 신대륙 적응에 실패한 것이죠.

그들은 현지의 자원을 이용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진짜 사인은 뼈에 흔적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뼈에 흔적에 안 남았다는 바로 이 사실이 결정적인 단서가 됩니다.

특별한 질병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는 것은 사망의 원인이 급성질환이었다는 뜻.

그들의 사인은 신세계의 풍토병이었습니다.

건강이 악화된 상태에서는 단순한 신세계의 독감도 치명적이었습니다.

 

 

 

 

타이노족은 훨씬 더 큰 희생을 치러야했습니다.

유럽인들이 들여온 천연두와 홍역, 장티푸스는 이들을 대량 학살했죠.

 

 

1498년 이사벨라에는 폐허와 죽은 자들만 남았습니다.

 

 

스페인 사람들은 이 사건을 거울삼아 훗날 성공적인 식민지를 건설하게 되지만

타이노족을 비롯한 토착민들은 멸망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타이노족은 한 세대가 가기 전에 모두 살해되거나 노예가 되거나 질병으로 죽어갔습니다.

이 이야기는 이사벨라는 제국건설 역사의 잃어버린 한 장이기도 하지만,

한 세계의 종말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최근 동굴이 하나 발견되었습니다.

울창한 숲 사이에 입구를 숨기고 있던 타이노족의 동굴이었습니다.

 

 

 

사람의 그림과 십자기호와 함께 타이노족의 역사가 펼쳐집니다.

암벽을 장식한 그림문자는 최근 들어 해독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동굴 깊숙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벽이 있습니다.

 

 

스페인 선박이 상륙하는 모습.

신세계에 처음 도착한 배와 원주민과 서구인의 역사적인 첫 만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배가 도착한 이후 암각화의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타이노족이 살아남았다면 이야기는 계속되었겠지만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한편, 이사벨라 만에서 사라진 콜럼버스의 사라진 함대를 찾는

비커박사의 탐사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콜럼버스 함대의 배에 묶여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닻을 하나 발견하는데 그쳤습니다.

하지만 탐사대는 더 많은 장비를 가져와 심도 깊은 탐사를 이어가겠다며

이 바다에는 반드시 난파선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500여년이 지난 지금에야 서서히 밝혀지고 있는 콜럼버스의 첫 식민지 실험.

끔찍한 재앙으로 역사의 한 페이지에 남게 되었지만,

진흙 속에 묻힌 채, 아직 기록되지 못한 이들의 진실을 찾아

육지와 바다에서의 수색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