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기자단(1~10기)/3기

타이타닉의 침몰은 스미스 선장의 안일함에서 시작했다

NIFS 2011. 7. 28. 15:32

 

 

 

 

 

 

 영국의 사우샘프턴을 출발해서 뉴욕으로 향하던 타이타닉호는 1912년 4월 15일 바다에 가라앉았다. 첫 항해를 시작한 지 닷새만의 일이다. 무려 1,515명의 인명이 바다로 사라졌다. 불운한 재해였을까. 하지만 수많은 인명피해를 최소화하거나 막을 수 있었던 기회는 있었다고 한다. 결국 인재에 가까웠던 셈. 이 사고의 책임은 누구에게 물을 수 있을까. 바로 타이타닉호의 선장인 에드워드 스미스(Edward J.Smith)이다.

 

 

-타이타닉호의 선장 스미스(위)와 타이타닉호의 설계자 토마스 앤드류스(아래), 영화 <타이타닉>중-


 스미스는 당시 가장 높은 몸값을 받는 선장이었다. 그러나 높은 몸값만큼의 능력을 보여주진 못했던 모양이다. 사고의 반년 전 이미 스미스는 전과가 있었다. 타이타닉호의 자매선 올림픽호가 영국의 순양함 호크호와 바다에서 충돌했을 때 올림픽호의 선장은 스미스였다. 올림픽호 역시 4만 톤이었다. 승객들은 긴급히 다른 배로 옮겨 탔고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 사고가 나고도 스미스선장에겐 책임을 묻는 어떠한 처벌도 없이 타이타닉호의 선장으로 다시 임명되었다. 이때부터 타이타닉호의 불운은 이미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안일한 판단으로 타이타닉호를 위기로 몰아넣은 스미스선장의 실제모습-

 

 

 스미스는 대서양으로 출항하기 전부터 방심했다. 한 번의 사고를 겪고서도 자만을 잃지 않았다. 모든 일은 결과론으로 그것이 오랜 경험의 자신감으로 비춰질 수도 있었겠지만 결과는 대참사였다. 결국 그는 자만한 것이다. 배에다 탐조등을 설치하지 않음은 물론 망원경을 갖춘 망대도 설치하지 않았다. 탐조등은 군함에만 필수적으로 설치되는 것이라 군함이 아닌 타이타닉호는 항해등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은 변명에 불과하다. 당시 가장 주목받고 가장 거대한 선박을 책임지는 선장의 자세라면 만에 하나라는 경우에도 대비해야 했다. 해운회사가 욕먹을 각오까지 하면서 탐조등 설치에 등한시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탐조등이란 광선 줄기를 집중시킬 수 있도록 만들어진 반사경이 있는 높은 조도의 전등을 말한다. 원거리의 물체를 탐색하거나 비추는 용도 또는 표지등의 용도로 쓰인다. 타이타닉호에는 탐조등이 없었기 때문에 저 멀리 다가오는 빙산을 확인할 수가 없었다. 항해등으로 혹은 육안으로 확인했을 땐 이미 늦은 상황이었던 것이다.(다음백과사전참고)]

 

-스미스선장이 등한시한 탐조등 (브리태니커 출처)-

 

또한 스미스는 망원경 망대설치에도 방심했다. 의무규정이 아닌 망원경 망대를 불필요한 것으로 여겼던 것이다. 생존한 선원 플리트는 망원경이 있었더라면 먼 거리의 빙하를 일찍 발견했을 것이라 말했다. 최소한 망원경이라도 있었다면 빙하를 피했을지도 모른다. 스미스의 판단미스의 대가는 처참한 대참사로 나타났다.

 

[망대란 적의 동정을 살펴보는 높은 대를 말한다. 타이타닉호는 망원경이 설치된 망대가 없었기 때문에 다가오는 빙산을 볼 수가 없었다. (다음백과사전참고)]

 

 

-망대의 모습, 영화<타이타닉>중-

 

 

 

-세계최고의 명성을 얻었던 선박과 선장-

 

 그의 안일함은 항해 중에도 이어졌다. 경험이 없는 선원들을 구명보트 대원에 배치했는데 이는 규정을 어긴 것이다. 규정에는 신참 선원을 구명보트 대원으로 배치해선 안 된다고 되어 있었다. 이는 인명피해를 더욱 키우는 결과를 낳았는데 서툰 선원들은 20척의 구명선을 전부 내리지도 못했고 심지어 2척은 침몰순간까지 매달려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당시 야간에는 돛대 위의 망대 두 명의 선원만으로는 위험에 충분히 대비할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었다. 그러나 스미스는 이조차 간과했다. 뱃머리와 선교 양측에도 항해사를 배치했어야 했다. 돛대위의 선원이 위험을 감지했을 땐 이미 선박은 위험 속에 있었다.

 

 

-경보는 계속 되었지만 스미스선장은 안일한 판단을 했다. 영화 <타이타닉>중-

 

-구명선의 부족에 대해 지적하지만 침몰하지 않을 거라 자만하는 설계자, 영화 <타이타닉>중-

 

 스미스선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북대서양 해상에 빙하가 떠다니고 있다는 경고를 받았음에도 시속 22노트 최고 속도로 무모하게 달렸던 것이다. 당시 예순두 살에 적지 않은 경험을 쌓은 스미스선장이 4월에 빙하가 바다로 떠내려 온다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게다가 다른 선박들로부터 이미 경고를 다섯 차례나 받은 상황이었다. 분명히 세계최고의 거대한 선박과 수많은 승객들을 책임지는 선장이라면 속도를 줄였어야 했다. 당시 타이타닉호와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었던 캘리포니아호는 어둠을 맞이하자 엔진도 끄고 만일에 대비했다. 속도를 줄이지 않고 질주한 타이타닉호와 비교된다.

 
 그렇다면 왜 스미스선장은 속도를 줄이지 않았을까. 정해진 시각에 맞추기 위해서다. 자신의 명성을 위해 승객들의 목숨을 걸었던 것이다. 가장 빠른 시간에 대서양을 횡단하는 선박에게 수여되는 청리본을 노렸던 것인지, 결국 영광을 얻기 위한 무모한 질주는 역사에 남을 대참사로 이어졌다. 물론 예정 시간을 지키라는 해운회사의 압박도 있었을 것이다. 어느 기업이나 그렇듯 고객과 직원들은 등한시 한 채 실적에만 혈안이 되어 있으면 망하게 되어있다. 타이타닉호를 호화스럽고 화려하게 광고한 해운회사에겐 선박의 명성을 얻는 것 말고는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스미스선장이 책임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승객과 선박의 안전의 최우선으로 생각했어야 했다. 그것이 선장의 기본이며 의무이니까.

 

-타이타닉호의 명성을 위해 최고 속도로 질주하라고 압박하는 해운회사, 영화 <타이타닉>중-

 

 

 물론 해운회사의 압박은 개인적인 추측이다. 스미스 개인적인 욕심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안전보다 우선시 되는 것은 없다.  

 

 해상의 궁전이라 불렸던 타이타닉호는 결국 쏟아지는 물의 압력을 이기지 못해 해저로 침몰하고 만다. 이 순간에도 스미스선장은 좋지 못한 판단을 보여줬다. 빙하와 충돌하자마자 타이타닉호의 설계기술사인 토머스 앤드류스는 배가 침몰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 보고를 받은 스미스선장은 바로 무전실로 달려가 구조요청을 해야 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한 행동은 일등석의 vip승객들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그 후에야 무전실로 향했지만 지나간 시간을 되돌린 순 없었다. 물론 무전실로 먼저 달려갔다고 해서 침몰을 막을 순 없었지만 분명 선장은 도리에 어긋한 행동을 했다. 모든 승객들과 선원들의 안전보다 일등석 승객들에게 격식을 차리는 것이 더 중요했던 모양이다.

 

-영화와 달리 스미스선장은 침몰 보고를 받자마자 일등석으로 향했다. 영화 <타이타닉>중-

 

-침몰하는 타이타닉호, 영화 <타이타닉>중-

 

 

-스미스선장의 최후는 영화와 다르다. 실제 그는 끝까지 승객들을 구명선으로 인도하다가 배와 함께 가라앉았다.-

 

 침몰순간까지 승객들을 구조하기 위해 노력을 하였고 타이타닉호와 함께 스스로 가라앉았지만 그는 이미 너무 많은 실수를 저질렀다. 타이타닉호는 영국의 해상 권력과 진보된 기술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스미스의 안일함에 영국의 진보와 명성은 모두 바다 속으로 가라앉아 버렸다. 명성을 쫓으려다 명성과 함께 침몰한 스미스는 명성과 영광대신 선장의 기본인 안전을 먼저 생각했어야 했다. 명성은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따라오는 것이니까.

 

 바다건너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리더의 역할과 안전 불감에 대해선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이야기이다. 뭐 리더의 역할은 잠시 잊더라도 적어도 안전제일은 기억에서 지우지 않아야 할 것이다. 빨리 찾아온 여름, 인명피해가 늘어가는 계절이 왔다. 몇 차례의 태풍이 우리를 괴롭힐지 모르고 장마는 얼마나 길어질지도 모른다. 혹서기가 되어서도 관광지에서의 안전사고가 끊이질 않을 것이다. 사고는 항상 방심과 자만에서 이어진다. 안전을 위해선 맘껏 소심해질 필요가 있다. 준비하고 대비해서 손해 볼 것 없다. 바다가 우리를 불러도 한 박자 뜸들이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달려가야 할 것이다. 

 

 

(참고: 영화<타이타닉>, 도서<위대한 패배자>)

 

바다야사랑해 블로그기자 김상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