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기자단(1~10기)/3기

나는 전설이다, [강치대왕의 전설]

NIFS 2011. 8. 16. 14:55

 

 

 

나는 우리 대한의 섬, 독도에 대해 아주 관심이 많은 편이다.

독도의 한맺힌 역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그에 비례해 뜻있는 국민들의 영토주권수호 의지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과거 잊을만 하면 다시 고개를 꿈틀거리며 간사한 뱀처럼 혀를 낼름거리며 말도 안되는 억지를 부리던 일부 일본인들은

최근 들어 자주 망언을 쏟아내곤 한다.

 

아무래도 이들은 일본에 친구가 없는 모양이다.

관심은 받고 싶은데 일본에서는 들어주는 사람들이 없으니 괜히 한국사람들을 자극하는 것.

한국인은 정에 약하니 자신들을 바라봐 줄 것이라고 찰떡같이 믿으면서 말이다.

 

이런 일본의 도발이 머릿속에서 점점 희미해지면서 나의 뇌리에 문득 천진한 눈망울을 한 독도의 수호신,

강치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2008년 5월 나른한 어느 금요일 저녁, 당시 대학생이던 나는 독도 아카데미 회원의 자격으로

독도 주권 수호 관련 교육을 받기 위해 대학로에 위치한 흥사단에 있었다.

 

"이번의 강연 주제는 지금은 멸종한 것으로 알려진 독도의 해양생물, 강치에 대해서입니다."

 

나는 옆의 친구에게 물었다.

"이봐, 친구. 강치가 뭐냐? 뭐, 참치 같은거냐?"

"우리 친구. 자네는 무식한게 참 매력이야^^. 그냥 들어ㅎㅎ 나도 몰러."

-_-+ . . .

 

 

 

강치. 학명[Zalophus japonicus 또는 Japanese Sealion]
강치는 바다에 사는 포유류로 앞다리와 뒷다리가 지느러미처럼 되어 있다.
 강치 수컷은 몸길이 2.4m, 체중은 490kg가량, 암컷은 몸길이 1.8m, 체중은 약120kg으로 수컷과 비교하면 체형이 다소 작음.
돌고래보다 영리한 머리를 가졌으며, 무리로 행동하고 암컷과 새끼는 한 곳에 정착하는 경향이 있음.

번식기는 4~7월로 다른 강치과 동물과 마찬가지로 일부다처제.

동해 및 러시아 사할린섬 일대에 분포하고 있었다.

언뜻보면 물개 혹은 바다사자를 연상시키는 외형에 검정 혹은 진한 밤색의 색을 띄고 있다.

국제자원보고연맹(IUCN)이 발표하는 '멸종위기에 처한 동식물 보고서' IUCN Red List에 따르면 멸종위기의 동물이다

 

주로 오징어와 물고기를 먹고 산 것으로 추정되며 19세기만 해도 곧잘 발견되곤 했던 이들은

우리의 섬, 독도에 적을 두며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이 돌로 된 섬은 강치들이 쉬기 좋은 바위들이 산개해 있으며 난류와 한류가 뒤섞여 먹이가 풍부해 더없이 살기 좋은 섬이었다.

그만큼 독도는 가히 '강치의 천국'이라 불릴 만 했다.

한때 수 만의 개체가 서식할 정도로 평화의 시대를 누리던 이들에게 불행이 닥친 것은

조선의 운명과 그 맥을 같이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인 어부들의 독도 강치 포획 모습

 

당시 조선, 즉 대한제국이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기 몇 해 전, 이미 독도는 일본 시마네현에 편입되고

일제 강점기, 일본 상인 나카이요사부로中井養三郞에 의해 설립된 다케시마 어렵회사는 대량의 강치 가죽이 필요했다.

강치 가죽으로 만든 양질의 가죽제품은 고가로 거래되었으며 지방은 기름으로 살과 뼈는 비료로 이용되었으며

심지어 어린 강치는 서커스 용으로 팔려나갔다고도 전해진다.

이와 같은 이유로 강치 한 마리 값은 황소 열마리와 맞먹었기 때문에 일본인들이 눈에 불을 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일제의 미곡수탈 등 말 못할 고통은 비단 우리 민족에게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

오랜동안 터를 잡고 살아오던 독도의 강치들에게까지 그 몹쓸 짓을 자행했던 것이었다.

 

비극으로 끝난 강치대왕의 전설

실제 강치대왕(박제된 모습, 사살된 후 일본으로 보내져 박제되었다고 전해진다.)

 

일본의 강치잡이가 성행하던 그 때, 일본인 어부들이 두려워하던 '강치대왕' 혹은 '리앙쿠르 대왕'의 박제 모습이다.

일본 어부가 발사한 탄환에도 겁먹지 않고 역으로 배를 습격해 일본인 어부들의 인명피해를 입히기까지 하여

많은 일본 어부들의 공포의 대상이었다. 과연 강치들의 지도자이자 영웅다운 모습이었다.

강치대왕의 몸 길이는 2.88m이며 몸 둘레는 3.1m에 달했으며 체중은 약 800Kg이었다고 하니 생전의 그 당당한 모습이 선명하다.

이 영웅은 이 땅의 주인인 조선 민중의 의병봉기처럼 끝끝내 저항하다가 1931년 7월에 사살당하며

국운 역시 일제의 만행과 수탈 아래 많이 쇠하였음을 일러주었다.

 

2011. 05. 08 MBC 서프라이즈 방송분

 

1980년대 국제회의에서 일본은 독도 강치의 멸종 원인이 한국 독도의용수비대 측의 남획이었다는

말도 안되는 억지 주장을 꾸며 국제 사회에서 한국에 강치 멸종의 혐의를 뒤집어 씌웠다.

멀리로는 우수한 문화를 전파해준 백제로부터 가까이로는 핵발전소 붕괴의 여파로 많은 한국민들이 불안에 떠는 가운데에서도

인도적 차원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데 대해 식민지배와 민족 수탈, 그리고 어이없는 영토 분쟁 획책 등을 통해서

배은망덕한 행위를 일삼는 등, 조상들의 만행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그 후대 역시 같은, 아니 그보다 더한 과오를 저지르는

작금의 행태를 볼 때 일본이라는 나라는 여전히 먼나라 인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역사적 교훈과 지금의 상황을 미루어 볼 때, 우리가 안으로는 힘을 기르고 우리의 것을 더욱 잘 알아

전 세계를 대상으로 스스로 변호하고 지킬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함은 두번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끝으로 8.15 광복절을 맞이하며 지난 세월 이민족의 침입으로부터, 일제 강점기동안 조국의 독립에 헌신하며 산화하신

많은 애국자, 독립운동가들의 유지를 다시한번 가슴에 새겨보며 부디 영면하시기를 조용히 빌어 봅니다. 

 

얼마전, 울릉도 근해에서 바다사자가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정말 기적처럼 강치가족 한 무리가

결국 생존해서 우리 곁으로 돌아온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가슴아픈 동물친구들의 멸종 소식앞에 가장 잔인하고 가장 미련한 동물은 인간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강치 학명에 일본(japon/japan)은 왜 들어갈까?

강치의 학명에 japon 또는 japan이라는 명칭이 들어간 것은 미국인 피터에 의해 일본 연안에서 발견된 '독도강치'가 '일본강치'로

오인한 까닭과 함께  일본이 먼저 국제 사회에 위와같은 학명을 등재 한 이유도 있다.

 

강치? 바다표범? 바다사자?

외견상 다리털이 자라는 모습과 손톱크기 등이 다르지만 가장 큰 차이는 뒷다리의 형태와 움직임의 차이이다.
강치는 육상에서 앞쪽으로 다리를 굽혀 보행할 수 있다. 그리고 앞다리를 미는 것처럼 몸을 일으켜 꽤 빠른 속도로 움직일 수도 있음. 반면에 바다표범은 뒷다리가 직선으로 뻗어있을 뿐 허리를 들어 올릴 수도 없고, 앞다리만을 사용해 몸을 출렁이면서 애벌레처럼 전진함. 그러나 물개와 바다사자는 강치과 동물이라 강치와 같은 움직임이 가능함.

 

리앙쿠르(Liancourt)?

서방세계에서는 1894년 독도를 발견한 프랑스의 포경선박 이름을 따서 독도를 리앙쿠르 락스Liancourt Rocks라고 부르기도 한다.

독도와 다케시마의 중립적인 지위로도 해석이 가능하지만 역사적 지리적 논리적으로 명백한 우리 영토가 분명한 독도이기에

우리로써는 용납하기 힘든 지명임에 틀림없다.

일본인 어부들은 이를 통해 강치대왕을 리앙쿠르 대왕이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사진출처- 한국 향토문화 전자대전(http://www.grandculture.net/),

독도본부(http://www.dokdocenter.org/), MBC 서프라이즈 2011.05.08 방송분

 

 

바다야사랑해 3기 블로그기자 박신영